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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8/28 07:59
필자는 개인적으로 후기낭만파의 교향곡을 어느 시대보다 좋아한다. 대표적으로 드러나는 브람스, 차이코프스키부터 브루크너와 말러에 이르기까지. 살아숨쉬는 낭만적 정서와 끊임없이 부풀어 오른 자유로움. 모짜르트, 하이든과 같은 고전적 교향곡에서 조금의 변화가 이루어진 베토벤, 그 이후의 슈베르트, 멘델스존, 슈만의 전기 낭만파.

멘델스존이 사망하고 슈만이 제3번 교향곡을 작곡한 이후 유럽의 음악계는 교향곡 작곡에 있어서는 휴지기에 들어가게 된다. 그리고 이 시기을 통하여 교향곡의 변화의 움직임을 보이게 되고, 교향곡은 베를리오즈의 '드라마틱 교향곡'이라던가 리스트의 '교향시', 바그너의 '음악극'등의 형태로 모습이 변화하기에 이른다. 이시기의 곡들은 전기 낭만파의 교향곡과 후기 낭만파의 교향곡의 시기를 연결해주는 음악들로, 후기 낭만파의 과도기적인 느낌이라고 할까. 자유로움의 발산, 감정표현의 절제가 점차 사라지면서 다양한 음악적 표현이 더해지고, 음악은 점차적으로 길어지게 된다.

필자는 후기 낭만파의 작곡가들 중에서 교향곡에 있어서는 차이코프스키를 가장 좋아한다. 그의 곡을 듣고 있으면 온몸의 스트레스가 다 날아가 버리는 것 같고, 그야말로 시원한 표현감에 상쾌하기까지하다. 후기 낭만파의 곡들을 필자가 선호하는 가장 큰 이유는 무엇보다도 기존의 현악이 교향곡을 중심적으로 끌고 갔다면, 이시기의 곡들은 관악의 시대가 도래했다는 것. 이제는 관악은 웅장한 느낌을 더해주는 보조적인 역할이 아닌, 곡 전체를 이끌어가는 주인공의 역할로 나타났다. 군악대를 나왔기에 어느 누구보다도 관악의 매력에 흠뻑 빠져있었기에 나의 음악적 갈증을 채워준 후기 낭만파의 교향곡, 그 중 차이코프스키의 곡을 특히 사랑한다.  
차이코프스키는 제1번 '겨울날의 환상'과 제2번 '소 러시아',  그리고 제3번 '폴란드'를 거쳐 제4번의 교향곡에 이르는데, 현재 많은 사람들이 애호하는 차이코프스키의 교향곡은 제4번과 제5번 그리고 '비창'교향곡으로 알려진 제6번 교향곡이다. 4번,5번,6번 교향곡을 듣고 있으면 어두움과 환희가 묘하게 공존하고 있다는 것. 차이코프스키의 특유의 표현방법으로 극과 극의 느낌을 절묘하게 배합하여 극적인 느낌을 가미하고 있다.

차이코프스키는 그의 후원자인 폰 메크 부인에게 편지를 지속적으로 씀으로써, 그의 속내를 낱낱이 드러내고 있는데, 그는 제5번 교향곡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이번 교향곡은 지금까지 쓴 교향곡에 비해 어떤 작품이 될지 짐작도 할 수가 없습니다. 이전에는 밤이 되어도 별로 지치지 않았는데 지금은 밤만 되면 아주 녹초가 되어 독서조차 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그도 가늠할 수 없는 교향곡 제5번. 이 곡은 1888년 11월 5일에 차이코프스키 자신의 지휘로 페테르부르크의 필하모니 협회 연주회에서 거행되었다. 하지만 각 신문은 혹평을 퍼부었다. 그는 이에 대해 다시 폰 메크 부인에게 이렇게 쓰고 있다.

이 교향곡 속에는 역겨운 부분이 있습니다. 너무 과장되게 치장한 번거로운 색채가 있습니다. 사람들이 본능적으로 느낄 수 있는 조작된 불성실성이 있습니다.

그의 걱정과 신문의 실랄한 비판에도 불구하고, 대중들은 교향곡 제5번에 열광하였고, 계속된 재공연의 요청에 점차적으로 이 곡은 대중들에게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필자가 이 곡을 처음 들었을 때, 어떻게 이런 곡이 있을 수 있을까. 암울한 러시아의 대륙적 무거움 속에서도 피어오르는 환희와 영광. 그 절묘한 조화가 다양한 관악기와 현악기의 연주로 드러나고 있는 곡. 특히 호른을 군악대에서 2년간 부른 필자로서는 이 곡을 사랑할 수 밖에 없게 되어 있었다. 그 이유인 즉, 이 곡은 거의 호른을 위한, 호른에 의해 빛난 곡이었기 때문이다. 한 악장의 거의 절반이 호른의 독주로 연주가 되고 있었고, 곡 전체에 호른의 울음소리(?)가 울려퍼지니 호른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곡을 듣고 있으면 절로 미소가 지어지게 만드는 곡이다. 


 
곡은 총 4악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각 악장을 살펴 보면,

제1악장 Andante-Allegro con anima. 어두운 분위기 속에서 클라리넷의 제1주제가 들려온다. 클라리넷의 울림이 깊고 무겁다. 클라리넷은 목관 악기이기에 가만히 듣고 있으면, 나무의 울림이 귀로, 그리고 마음으로 전해진다. 이 무겁고도 애절한 클라리넷 소리에 가슴은 가라앉고 어둠만이 가득히 세계를 자리 잡는다. 이윽고 현악기가 그 느낌을 받으며, 분위기를 약간은 반전시킨다. 분명, 어둡고 애절한 느낌이지만 조금은 경쾌하려고 노력하는 듯한. 그 우울한 운명 속에서 벗어나려는 노력. 현악기의 베이스에서 그 위를 노니는 클라리넷과 플룻, 그리고 오보에. 그리고 곧 금관악기들이 나오면서 곧 거대한 파도가 온 공간을 흔들기 시작한다. 한 번 폭풍우를 흔들고, 다시 고요한 분위기를 타다가 이제는 보다 밝은 느낌으로 곡이 나아간다. 조금은 느리게 그리고 편안하게, 현악기의 소리와 오보에의 주고 받는 듯한 조화. 그리고 곧 터지는 환희. 이제는 어둠에서 벗어나, 희망을 바라보는, 터질듯한 기쁨. 오묘한 조화. 그 곳에서 울려펴지는 호른의 소리. 그리고 그 환희의 순간은 다시 어두움을 몰고 오는, 하지만 결코 비관적이지는 않은, 가슴 한 곳이 묘하게 흔들리는 느낌이다. 시원하면서도 거칠게 흔들리는. 그리고 다시 한번 찾아오는 클라리넷의 주제. 한 박자 쉬고, 다시 나아가는 곡의 흐름. 전반부와 비슷하게 후반부도 어두움 속에서 점차적으로 기쁨으로 향하는 그 패턴이 다시 한번 반복되지만, 결국은 어두운 흐름에 묻히며 곡은 끝을 맺는다. 결국 그 운명에서 벗어나지 못한 듯.

제2악장 Andante cantabile. 필자가 가장 좋아하는 악장이다. 이 악장은 호른의 아름답고 신비한 느낌을 만끽 할 수 있는 부분이다. 현이 깊고도 진지한 느낌을 마련한 뒤 호른의 아름다운 노랫소리가 울려퍼진다. 안개가 자욱한 새벽녘에 조용히 울려퍼지는 노랫소리. 이 노래는 브루크너의 교향곡 4번의 1악장의 느낌과는 전혀 다르다. 조용히. 아름답게, 눈을 감고 있으면 마치 그리운 그 곳을 떠올릴 수 있듯이.. 아. 호른. 호른은 이러한 아름다움이 있다. 호른은 관이 벽을 향하고 있다. 즉 앞으로 소리가 뻗어나오지 않는다. 그렇기에, 조금은 뭉글어진 듯한 느낌이면서도, 어떻게 들으면 답답한, 하지만 이렇게 아름다운 음악을 표현하기에는 더 없이 적절한 악기다. 호른이 주인공이 되어 2악장을 움직이면서도, 현악은 조용히 호른을 받쳐주며, 클라리넷이 호른의 노래를 뒤따른다. 이윽고 오보에가 등장하며 이번에는 오보에의 노래를 호른이 뒤따른다. 하지만 오보에는 조용히, 호른은 보다 크게. 하지만 여전히 느껴지는 묘한 새벽의 풍경. 그리고 잠시 후, 현악이 호른의 주제를 받고, 호른은 이 주제의 뒤에서 잠깐씩 등장하며 그 여운을 잇는다. 그리고 현악과 호른에 이끌려 노래는 점차 크게 울려퍼지며, 팀파니의 강한 베이스와 금관악기의 울려퍼짐을 계기로 하여 곡의 끝으로 향한다. 후반부에서는 현악기에 의해서 호른의 주제가 계속해서 전개되면서 조용히 곡의 끝을 맺는다. 아름다움. 극도로 아름다운 악장.

제3악장 Waltz-Allegro moderato. 2악장에서의 극도로 아름다운 발라드를 들었더라면, 이제는 조금은 편안하고, 쾌활한 왈츠를 듣게 된다. 정말 이 곡은 어느 악장 하나 빠질 수 없는 아름다움이 있다. 현악의 주제의 전달은 클라리넷, 바순, 오보에등이 그 주제를 받으면서 점차 확대되는데, 현악의 피치카토 또한 절묘한 느낌을 살린다. 그리고 전반부 보다는 좀 더 빠르게 현악이 정신 없이 흔들리면서, 목관 금관도 함께 마치 재잘재잘 거리는 소리처럼 재미나게 곡을 이끈다. 그리고 다시 한번 처음의 왈츠를 여러 악기가 돌아가면서 부르며 곡은 끝을 맺는다.

제4악장 Finale-Maestoso-Allegro vivace. 장엄하면서도 엄숙한, 하지만 그렇게 어둡지만은 않은. 현악의 중후함이 느껴지는 시작점. 현악의 주제는 다시 다른 악기들로 인해서 재현되고, 그때 현악은 중후하게 베이스를 맡는다. 그리고 트럼펫의 울림에 이어 전체의 장엄한 울림 속에 분위기는 전환을 맞는다. 팀파니의 긴장감있는 울림 뒤에 휘몰아 치는 듯한 전개. 속도감 있는 전개. 빠르게 바쁘게 흘러가면서 여기 저기서 들려오는 노래소리. 무언가 갈길을 확 달려가는데, 주위에서 하나하나 노래가 들려오는 듯한 느낌이랄까. 이러한 분위기를 한 번 몰아치고 나면, 전체적으로 함께 어울어져서 노래가 시작된다. 금관악기가 중심이 되고, 현악기는 옆에서 보조하며 함께 끝을 향해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간다. 듣고 있으면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말을 타고 달려가는 듯. 시원하면서도 거침없는 진행. 즐겁고 희망차고, 긴장감에서 벗어난 듯한 경쾌함. 말의 다그닥 다그닥 거리는 소리를 현악기가 재현하면서, 그 위를 관악기와 바이올린이 이끌어간다. 한 바탕 크게 몰아친 곡의 분위기는 후반부로 가면서 정리되는 느낌이다. 한템포 쉬었다가 다시 속도를 늦추어 각종 악기가 차근 차근 발을 맞춰 진행해 나가는 듯한. 콘트라베이스의 깊숙한 울림 속에서 바이올린은 노래하고, 또 트럼펫과 호른이 우렁차게 울러퍼진다. 그리고 그 끝을 화려하고도, 강렬하게. 온몸의 전율을 주며 끝을 맺는다.  

나는 이 차이코프스키 교향곡 제5번을 레너드 번스타인의 1988년 음반 파일으로 가지고 있다. 뉴욕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의 앨범이다. 레너드 번스타인은 미국의 대표적인 지휘자로, 다소 완벽하고 딱딱한 느낌의 카라얀과는 달리 역동적이며 느낌에 우선시 되는 스타일을 가지고 있다. 그는 뉴욕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오랜기간 함께하며 다양한 명곡을 탄생시켰는데, 그 중 하나가 차이코프스키 교향곡 시리즈며, 말러 시리즈도 상당히 유명하다. 내가 좋아하는 그의 음반은 말러 교향곡 제2번 환생인데, 그 마지막의 피날레를 지휘하는 모습은 잊을 수가 없다.(몇 번을 돌리고 또 돌리면서 유투브를 봤는지 모르겠다. 보면서 감동 받고 또 받고..) 그의 지휘 스타일은 그야말로 감정에 휩싸여서 약간 오버하는 듯한 제스쳐가 나오는 경향이 있지만, 이는 그가 곡에 심취해서 곡과 함께 움직이는 것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아니, 동영상을 보면, 정말 나도 그 지휘자의 표정에 취해 함께 곡을 즐기고 있는 지경에 이른다. 그의 스타일은 곡을 역동적이면서 빠르게, 그리고 강하게 휘몰아 치는 느낌을 주며, 또한 드라마틱한 효과를 자아내어 듣는 이를 통해서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도록 한다. 그렇기에 나 또한 그가 지휘하는 곡을 듣고 있으면 눈물이 찔끔 흘러내릴 떄가 있나보다. 차이코프스키와 번스타인, 이 보다 더 환상적인 조합은 없을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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